환경에 해를 끼치는 비건 화장품? 그린워싱 경계 사례 분석
‘비건 화장품’은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으로 알려져 대개 윤리적이고 환경친화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비건’이라는 단어가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되며, 실제로는 환경에 해를 끼치는 제품이 ‘그린’한 척 포장되는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부르며, 이는 소비자의 신뢰를 저해하고 비건 철학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이번 글에서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들이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또는 표면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분석하며, 대표적인 그린워싱 사례와 소비자가 경계해야 할 기준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비건이라고 모두 ‘친환경’인 것은 아니다
1.1 비건 화장품의 ‘환경성’은 별개의 문제
비건 화장품이라는 용어는 성분과 동물실험 유무에 집중된 기준이다. 즉, 동물 유래 성분이 없고, 제조 과정에서 동물실험이 없었다면 비건 인증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해당 제품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 탄소 배출, 포장재 구성 등을 고려한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많은 브랜드가 ‘비건=친환경’이라는 인식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도, 실제 포장재는 과도한 플라스틱이거나, 제조 공정에서 탄소를 과다 배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2 소비자는 단어의 이미지에 속기 쉽다
‘비건’, ‘그린’, ‘클린’, ‘내추럴’, ‘에코’ 등은 법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표현이며, 브랜드가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케팅 언어다.
소비자는 이런 단어를 보고 제품이 윤리적일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제품의 전 과정에서 실질적 환경 기준이 충족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2. 그린워싱의 대표 유형과 실제 사례
2.1 과도한 포장재 사용
‘비건’ 마크를 강조하면서도 제품 하나에 3중 이상의 플라스틱 포장을 사용하는 브랜드가 많다. 일부 브랜드는 외부 박스, 내포장, 내용기까지 모두 비재활용성 재질로 구성해, 제품 사용 후 버려지는 플라스틱 양이 제품 내용물보다 많은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성분은 비건이지만, 쓰레기 배출량은 고탄소 제품과 다를 바 없는 구조’로 명백한 그린워싱에 해당된다.
2.2 생분해성 포장이라는 허위 이미지
일부 브랜드는 ‘생분해성 포장’이라 표기하지만, 산업용 고온 컴포스트 환경에서만 분해되는 PLA 계열 소재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포장은 일반 가정이나 자연 상태에서는 사실상 분해되지 않으며, 소비자는 재활용 불가능한 포장재를 ‘친환경’으로 오인하게 된다.
2.3 탄소 배출량 무시한 글로벌 물류
제품은 비건 성분으로 구성되었지만, 원료는 유럽에서, 포장재는 중국에서, 생산은 베트남에서 진행되며 최종적으로 한국 시장에 수입되는 구조를 갖는 브랜드도 존재한다. 이런 글로벌 분산 공급망은 단일 제품 하나당 수천 킬로미터의 이동 경로를 만들고,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막대하다. 그러나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성분은 비건입니다’라는 말로만 설명하며 공급망의 탄소 발자국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2.4 인증 마크의 오용 또는 자체 제작 마크 사용
공식 인증 기관이 아닌, 브랜드 내부 기준으로 만든 ‘비건 로고’를 붙여 소비자에게 공식 인증 제품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포장도 그린워싱의 일종이다. 이 경우 제품이 실제로 동물성 성분을 배제했더라도, 공급망 추적, 교차 오염 방지, 포장재 윤리성 등 공식 인증 기준이 빠져 있을 수 있다.
3. 소비자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3.1 ‘비건’이라는 단어 외에 무엇이 명시돼 있는가?
- 공식 인증 기관의 명칭이 있는가? (예: The Vegan Society, EVE VEGAN, PETA 등)
- 성분 외에 포장재, 유통 방식,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있는가?
- 탄소 중립 또는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천 정책이 명시되어 있는가?
이러한 정보를 브랜드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비건’이라는 단어는 신뢰보다 이미지를 위한 장식일 가능성이 높다.
3.2 포장재에 대한 세부 정보 확인
- 포장에 사용된 플라스틱이 어떤 재질인가? (재활용 가능한가?)
- ‘생분해성’이라면 어떤 조건에서 분해되는가?
- 리필이 가능한 구조인가, 리유저블 디자인이 도입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제품의 전체 환경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4. 비건과 지속 가능성은 함께 가야 한다
4.1 성분 윤리와 환경 윤리는 분리될 수 없다
진정한 비건 화장품은 단순히 성분만 비건이 아니라, 그 제품의 생산과 소비 전 과정에서 생명과 환경을 존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건이라는 이름조차 ‘가짜 윤리’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4.2 브랜드의 투명성이 핵심 기준이 된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 기능만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이제 ‘어떻게 만들었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가’를 묻는다. 이러한 시대에서 진짜 브랜드는 숫자가 아닌 태도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5. 브랜드가 그린워싱을 피하기 위한 실천 전략
5.1 내부 기준 마련: 인증 이상의 자율적 책임이 필요하다
비건 화장품 브랜드가 단순히 인증 획득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브랜드 내부에 환경 기준과 사회적 책임 기준을 명확히 수립해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내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 전 성분의 원산지, 유래, 지속 가능성 평가 기준
- 포장재 기획 시 탄소 배출, 재활용률, 회수 체계까지 고려
- 전 제품에 대해 ‘환경 발자국’ 데이터를 측정하고 투명하게 공개
- ‘그린’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할 경우 그 의미와 근거를 소비자에게 명확히 제시
이러한 기준은 외부 감사보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드러내는 요소가 된다.
5.2 마케팅팀과 제품기획팀의 협업 구조 재편
많은 그린워싱 사례는 제품을 직접 설계하는 팀이 아니라 마케팅팀이 소비자 니즈만 반영해 키워드를 강조하면서 발생한다.
따라서 기획 단계부터 마케팅까지 제품 전 사이클에 일관된 윤리 기준이 적용되도록 조직 구조 내 협업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6. 소비자에게 필요한 ‘능동적 질문’의 문화
6.1 “이 제품이 정말 비건인가?”라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이제 소비자는 단지 “비건 성분인가요?”, “동물실험은 없었나요?”라고 묻는 것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이 제품은 어떤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나요?”
- “생분해성 포장은 어떤 환경에서 분해되나요?”
- “이 제품을 만드는 데 탄소 발자국은 얼마나 발생했나요?”
- “리필이나 포장 회수 시스템이 있나요?”
이처럼 환경적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브랜드가 더 신중하게 시스템을 설계하도록 만드는 자극이 된다.
6.2 리뷰, 피드백, SNS 공유를 통한 행동 실천
소비자가 느낀 환경적 불일치 요소에 대해
리뷰나 SNS 콘텐츠로 공개적인 피드백을 남기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브랜드에 변화 압박을 주는 직접적인 방식이 된다.
결론: 비건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편리한 환경주의’를 경계하라
‘비건’이라는 말은 이제 많은 소비자에게 윤리와 환경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의 무게를 이용해 실제 환경 파괴를 가리는 브랜드의 그린워싱 전략은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표면적 키워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브랜드 역시 더는 ‘이미지 마케팅’만으로 지속 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
비건 화장품이 진짜 지속 가능한 선택이 되기 위해선, 성분 너머의 이야기, 포장 안쪽의 구조, 유통 바깥의 맥락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진짜 친환경은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소비자의 눈이야말로오늘날 가장 강력한 윤리적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