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화장품

비건 화장품과 노동 윤리

ggomi-news 2025. 7. 2. 19:10

많은 브랜드는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성분을 강조하며, 지속 가능한 소재를 앞다퉈 홍보한다. 하지만 실제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 과로, 유해물질 노출 환경에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비건이 ‘무엇을 쓰지 않느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만들고 있는가’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비건 화장품 제조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환경, 그리고 비건 윤리와 노동 윤리의 충돌 혹은 접점을 중심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비건 화장품 그리고 노동 윤리

 

 

1. 비건 화장품 산업의 빠른 성장과 그 이면

1-1. 성장률에 비해 느린 윤리적 기준의 확대

글로벌 비건 화장품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180억 달러 규모를 돌파했고, 연평균 6~8%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에 발맞춰 많은 브랜드들이 '비건 라벨'을 붙이고 있지만, 제조 공장의 노동 환경은 그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 브랜드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운영되는 공장에서는, 표면적인 인증 기준은 충족하되 실제 작업장의 노동 조건은 열악한 경우가 적지 않다.

1-2. 윤리의 ‘외주화’

비건 인증이나 포장지에는 친환경, 동물복지,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지만,
정작 그 제품을 실제로 생산하는 사람들의 임금, 안전, 복지는 브랜드 서사에서 배제되기 쉽다.
이는 브랜드가 ‘윤리적 이미지를 위탁하고, 그 이면을 감추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비건 화장품 제조 공장의 일반적인 노동 구조

2-1. 위탁 생산과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 운용

비건 화장품의 대부분은 자사 공장이 아닌, 제3자 제조사(OEM/ODM)를 통해 생산된다.
이 제조 공장들은 시간당 수천 개의 제품을 생산해야 하며,
생산 공정의 상당 부분은 노동 강도가 높은 수작업 공정으로 이루어진다.

  • 화장품 충진, 포장, 검사, 라벨 부착 등의 공정은 대부분 비정규직, 단기 계약직 근로자가 담당
  •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기본 시급 수준의 임금, 야간 및 주말 잔업이 기본으로 작동

2-2. 고압적인 생산 일정과 안전 사각지대

특히 비건 화장품은 식물성 성분을 활용하다 보니,
원료의 변질을 막기 위한 시간 관리, 제품 포장기한 내 출고 등의 압박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는 일정이 빠듯하고, 작업 환경에 여유가 없는 구조를 만든다.

또한 일부 공장에서는 방진 마스크나 보호 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며,
유기 용제, 향료, 색소 분진 등의 장기 노출로 인한 건강 문제 위험도 존재한다.

 

3. 윤리 인증과 실제 노동 윤리의 괴리

3-1. ‘비건 인증’은 노동 조건을 평가하지 않는다

PETA, The Vegan Society, Leaping Bunny 등 주요 비건 인증기관은
제품에 동물성 원료가 포함되어 있는지, 동물실험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인증을 부여한다.
노동자의 안전, 임금, 근로시간, 고용 형태 등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즉, 비건 화장품이더라도, 착취 노동, 장시간 근로,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3-2. ‘클린 뷰티’와 ‘윤리적 노동’은 별개로 인식되는 구조

많은 브랜드들이 '클린', '친환경', '비건'을 강조하며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있지만,
노동 윤리에 대한 브랜드의 입장이나 실천 내용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제품의 청결’은 강조하지만, ‘생산 환경의 청결’은 외면하는 구조를 낳는다.

 

4. 노동 윤리를 고려한 진짜 윤리적 브랜드 사례

4-1. Lush – 공정 노동 인증 기반의 생산 시스템

러쉬(Lush)는 자사 공장에 대해 Fair Trade 원칙과 Living Wage(생활임금) 정책을 도입했으며,
제품을 포장하거나 생산하는 직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해 연 1회 이상 외부 감사를 받고 있다.

특히, 유럽 지역 공장에서는 6시간 근무제와 재택 근무 시범 운영을 도입하며,
화장품 산업 내 노동 윤리 개선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4-2. Ethique – 임금 투명성 공개

뉴질랜드의 비건 뷰티 브랜드 에띠크(Ethique)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든 직원의 평균 임금, 근로시간, 휴가 보장 정책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또한, 제조 협력업체에도 윤리 기준을 요구하며, 이를 충족하지 않을 경우 공급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5. 소비자가 알아야 할 ‘보이지 않는 윤리’

비건 화장품을 구매할 때, 우리는 ‘성분’만을 보지 않는다.
이제는 그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그 과정이 인도적이었는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노동 윤리 체크포인트:

  • 공식 홈페이지에 노동 윤리, 공장 운영 관련 정보가 있는가?
  • 공정무역 인증 또는 노동 기준 관련 인증을 받았는가?
  • 정기적인 감사를 받고 있으며 결과를 공개하는가?
  • 비정규직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는가?

 

6. 국제 기준은 노동 윤리 포함 비건을 지지할 수 있는가?

비건 화장품 인증 제도는 지금까지 성분과 동물실험 여부에만 집중되어 왔지만,
국제 사회는 점차 공급망 전반의 인권과 노동 조건까지 고려하는 통합 인증 체계로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6-1. 노동 윤리를 포함한 글로벌 인증 제도

  • SA8000 (Social Accountability International)
    노동자의 근로 조건, 아동 노동 금지, 안전한 작업 환경, 노동시간 제한 등을 명시
  • Fair for Life 인증
    원료 생산자와 가공자 모두에게 공정한 임금과 근무조건을 보장해야 함
  • B Corp 인증
    환경, 노동, 지역사회, 거버넌스를 모두 고려한 기업 인증 시스템

이러한 인증은 아직까지 화장품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노동 윤리를 비건 인증에 병합하려는 시도로서 점차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일부 소비자 단체는 “비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일수록 인간의 노동 윤리에 민감하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통합 윤리 기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7. 소비자의 변화가 브랜드를 바꾼다

이제 비건 화장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단지 ‘성분’만이 아니라,
그 제품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정의로운지를 함께 고려하는 윤리 소비자(Ethical Consumer)**로 진화하고 있다.

7-1. SNS와 후기 문화의 변화

최근 SNS에서는 제품 성분 분석 외에도
“이 브랜드는 노동 환경은 어떤가요?”, “비건이면서 공정 노동도 지키나요?”라는 질문이 자주 보인다.
이는 소비자들이 단지 비건 인증 마크에 안주하지 않고,
그 이면의 시스템과 가치를 추적하고자 하는 흐름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다.

브랜드는 이제 더 이상 ‘보여주는 윤리’만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없으며,
실질적 행동과 투명성으로 답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7-2. 노동 윤리를 반영한 브랜드가 선택받는 시대

윤리적 노동까지 실천하는 브랜드는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지속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제 소비자는 “누가 이 제품을 만들었는가”를 묻고 있으며,
그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미래 비건 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결론: 진정한 ‘비건’은 인간과 동물을 모두 존중하는 시스템에서 탄생한다

비건 화장품은 단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그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 또한 존엄하게 대우받고 있는가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 소비는 결국 생태계 전체, 생명 전체에 대한 존중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인간 노동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비건 화장품 시장은 ‘동물과 환경을 위한 선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과 노동의 윤리까지 포괄하는 전방위적 윤리성’을 기준으로 진화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비건’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노동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선택은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구할 수 있어야 한다.